열왕기 상하를 읽다 보면 수많은 인간 군상이 나온다. 얼마 전 with Gem에 올린 늙은 선지자와 유다에서 온 선지자 이야기가 어제 설교 시간에 나왔다. 둘 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오늘 읽은 왕하 6장, 시리아 군에게 포위당한 사마리아 성의 여호람 모습에서도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간단하게나마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려 한다.
늙은 선지자는 왜 거짓말까지 해가며 유다에서 온 선지자를 붙잡았을까.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영발이 떨어진 상태에서 영발이 충만한 사람과 교제하고 싶었던 건지, 나라가 이 모양인데 손 놓고 있는 와중에 다른 선지자 대접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지. 의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유다에서 온 선지자를 죽이고 싶어서 꼬여낸 건 아니었다는 거다.
내가 무심코 하는 작은 거짓말들도 누구에게 해를 끼칠 거라 생각하며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 작은 거짓말이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어떤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이 하라신 말씀을 전하고 나무 아래 기진맥진해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면 그걸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유리하게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고 싶어 하는 나는, 몇 번 사자에게 물려 죽었어야 했는지 셀 수도 없다. 소위 직통계시라는 걸 사모하는 나인데, 그런 걸 받아도 흔들리는 게 사람이라는 걸 이 본문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여호람은 아합의 아들이다. 엄마가 이세벨인 것치고는 이만하면 됐다 싶을 만큼이다. 신앙도 마음도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걸 보면 아합을 더 닮았나 보다.
시리아에 포위당하고 시간이 오래 지나자 먹을 게 없어 물가가 살인적으로 치솟았다. 여자 둘이서 자식을 한 명씩 돌아가며 잡아먹는 지경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호람은 겉옷을 찢으며 슬퍼하는데, 속에 삼베옷을 입고 있다. 무늬만이라도 회개하고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옷을 찢으며 엘리사를 죽이겠다고 다짐하고 엘리사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 앞에서 혼자 말한다. 이게 다 여호와가 주신 재앙인데, 도움을 구하면 뭐하나. 엘리사를 죽이겠다는 말은 이 재앙의 원인이 엘리사가 섬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대한 원망이다.
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다. 그분은 다 알고 계시고 다 하실 수 있는데, 나를 이렇게까지 되도록 내버려두셨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 성경 밖에서 이 장면을 읽는 나는 제삼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네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이니 스스로를 탓해야지’ 하겠지만, 그 장면 안에 들어가 있는 여호람은 알 수가 없다. 그는 이미 삼베옷도 입고 할 일을 다 했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큰 원망을 하고 있는 상황일 테니까.
급할 때는 하나님을 찾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원망하고, 어차피 하나님 마음인데 하며 자포자기하는 모습. 딱 나의 신앙 상태다.
앞에 쓴 글에서도 보았듯이, 나는 내 감정을 위해서는 감정이 하얗게 불탈 때까지 이런 생각을 덧붙이지 않을 거다. 다 타고 남은 재를 바라보며, 그때 다시 하나님을 바라볼 거다. 그게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답이 뻔한 걸 붙들고 왜 이러고 있나 싶건 상관없다.
나에게 중요한 건 모래 위에 집을 쌓지 않는 거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럴듯한 모래성이 아니라, 내 마음을 아무리 뒤집어 까봐도 여기 이만큼 있는 확실한 신앙을 조금씩이나마 세워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