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유비라는 분의 홈페이지에서 ‘돌봄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다. 내 안에 복음이 아닌 생각들이 매일 머릿속을 가득 채워도 매일 복음으로 무장한 선교사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선교사들이 죽어도 언젠가 이 땅에 십자가가 온전히 세워지길 기대하면서… 한참 감동받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어가는 선교사들의 고통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하나님의 사랑은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을 왜 그렇게 내버려 두시는 걸까. 아니, 애초에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누리는 평안이, 이 복음이 애초에 맞는 건가?
다음 날 아침 사무엘서 13-14장을 읽을 차례가 되어서 읽다가, 요나단이 사울의 명령을 듣지 못하고 꿀을 먹은 후 사울이 하나님께 전쟁에 관한 뜻을 묻는데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누가 잘못했는지 가리는 제비는 요나단을 가리켰다. 하지만 진짜 죄인은 사울이었다. 성경에는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도대체 하나님은 무슨 생각이신 거지? 하는 장면들 말이다.
그런 장면들을 돌이켜본 결과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윤리와 관계없이 일하시는 분이라는 거다. 우리는 트릭을 쓰는 걸 정당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하는 과정도 모두 단순하게 흑이 아닌 백일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인과응보 같은 단순한 인과율을 따르지 않으신다. 그럼 뭘까.
우리의 눈으로 보기엔 트릭일지 모르지만, 그걸로 사람의 중심을 분별하신다는 거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애매한 상황,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밑바닥이 드러나게 하신다. 그리고 죄에 대한 심판은 자연발생적 결과물이다.
직접적인 개입을 하시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미 이루어진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실 때가 많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자기가 선택하고 부모를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 말라고, 이걸 선택해야 한다고 알려줘도 고집을 부리다 원치 않은 결과를 보면 우는 거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누가 알겠냐마는, 내 마음의 중심이 그분을 향하고 있다면 죄악된 세상에서 늘 있어 마땅한 고통 속에서도, 고통을 없애주지 않으신다 해도 여전히 내 곁에 함께 고통받고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야기지만, 마지막으로 예지예정이 맞냐 자유의지가 맞냐에 대해 지금 드는 생각은 그냥 둘 다 맞다. 하나님이 모순처럼 보이는 두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하셔야 할 이유가 없다. 선악과를 따 먹을 자유의지를 주신 것도 맞고, 그런 사태에 대해 구원의 예정 백업 플랜을 세워두신 것도 맞다. 그걸 믿기로 선택한 자가 구원을 받는 것도 맞고, 그들을 이미 기대하고 계셨던 계획도 맞다. 양자역학처럼 확인하는 순간 둘 중 하나로 결정되는 거니까, 아직 확인 안 한 지금의 우리는 두 가지가 중첩된 상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