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그 지혜가 오히려 독이 됐을 수 있다.
지혜가 오히려 독이 됐을 수도 있다
솔로몬은 신명기 17장의 왕의 규례를 몰랐던 게 아니다.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은금을 쌓지 말 것 — 이 금지 목록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몰라서 어긴 게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너무 지혜로웠다는 데 있다. 이방 여인들과 정략결혼을 해도 자신은 그들의 우상에 휘둘리지 않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보다, 지혜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거다.
가장 지혜로운 자가 범하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내가 시스템보다 위에 있다는 오만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잊은 게 아니라, 자신의 지혜를 과신해 그 경계선을 스스로 넓히다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제국의 크기가 신앙의 자리를 밀어냈다
솔로몬의 왕국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번영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그 왕국을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순간부터 구조적 압박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이 주변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외교적 안정을 위한 정략결혼이 필요했다. 군사적 억제력을 위한 병마 확충이 필요했다. 국격에 맞는 대규모 건축이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이 율법이 금지한 것들이었다.
솔로몬이 초심을 잃은 시점은 국가 시스템이 가장 거대해진 시점과 일치한다. 개인의 도덕적 실패이기도 했지만, 세상적인 방식으로 제국을 유지하려는 시스템 자체가 신앙과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의 통치 방식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침몰했다.
은혜가 당연함이 될 때
다윗은 광야에서 결핍을 겪으며 하나님을 만났다. 쫓기고, 굶고, 배신당하면서 “주께서 내 산성이요 피난처”라고 고백한 시편들은 진심이었다.
솔로몬은 달랐다. 태어날 때부터 풍요 속에서 자랐고, 기도 한 번에 엄청난 지혜와 부를 선물로 받았다. 결핍의 경험 없이 주어진 압도적인 축복은 시간이 흐르면서 감사가 아니라 ‘내가 당연히 누리는 자산’이 되기 쉽다.
지식이 신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솔로몬이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의 내용을 머리로 아는 것과, 그분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경외함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전도서에서 그가 뒤늦게 고백하듯, 모든 것을 소유해 본 지혜의 끝은 결국 허무였다.
성전을 짓는 데 7년이 걸렸고, 자신의 궁궐을 짓는 데 13년이 걸렸다. 어쩌면 초심을 잃은 첫 단추는 이방 여인과의 결혼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기울어진 마음의 무게중심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