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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는 망한 뒤에 쓰였다

열왕기는 솔로몬 시대에 쓰인 실록이 아니다. 나라가 완전히 망한 뒤에 쓰였다.


열왕기는 언제, 왜 쓰였을까

열왕기상하가 최종 편집된 시기는 바빌론 포로기다. 기원전 560-538년경, 솔로몬이 죽고 약 400년이 지난 뒤다. 나라가 망해 이방 땅에 끌려온 절망적인 상황에서 쓰였다.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질문은 분명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우리가 이렇게 됐는가. 열왕기의 편집자들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우리 왕들이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의 화려한 업적을 칭송하면서도,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망할 수밖에 없었던 씨앗을 함께 고발해야 했다.


가나안 족속들은 정말 솔로몬 때까지 노예였을까

열왕기상 9장 20-21절은 솔로몬이 가나안 잔존 족속들을 노예로 삼아 “오늘까지” 역군으로 썼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열왕기상 5장 13절은 이렇게 말한다.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역군을 불러일으키니 그 수가 삼만 명이라.”

온 이스라엘에서 삼만 명을 뽑아 강제 노역을 시켰다. 그런데 9장에서는 이스라엘은 노예로 삼지 않았다고 말한다. 두 구절이 충돌한다.

솔로몬의 대규모 건축은 가나안 잔존 세력의 노동력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무거운 세금과 강제 부역이 부과됐다는 뜻이다. 솔로몬이 죽자마자 북쪽 지파들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도 “아버지가 우리에게 지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왕상 12:4)였다. 그 요구 때문에 나라가 쪼개진 것이다.

그렇다면 9장의 서술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방어하려는 신학적 서술이거나, 이스라엘 백성까지 노예처럼 부렸기에 왕국이 찢어지는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고발하는 장치로 읽을 수 있다.


이긴 줄 알았는데 진 쪽은 솔로몬이었다

솔로몬은 가나안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복속시켜 노예로 부렸다. 우리가 이겼고, 그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다.

결과는 반대였다.

외교적 정략결혼과 문화 교류를 통해, 그 노예들의 종교가 솔로몬의 안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바알, 아스다롯, 밀곰 — 가나안과 주변국의 신들이 예루살렘 심장부에 자리를 잡았다. 육체적으로는 가나안이 솔로몬의 노예였지만, 영적으로는 솔로몬이 가나안의 노예가 됐다.

열왕기 편집자가 바빌론 포로지에서 이 역사를 기록하며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것이다. 경제 성장, 군사적 지배력, 화려한 성전 건축에 취해 있는 동안, 가장 경계해야 했던 것에 통째로 삼켜지고 있었다는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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