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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Ja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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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5-7장 — 솔로몬 성전을 지은 히람은 왕이야, 장인이야?

히람이 두 명이라고?

성경에 ‘히람’이라는 동명이인이 두 명 등장한다.

자재를 대 준 사람도 히람, 그걸 만든 사람도 히람. 성전의 껍데기는 온통 ‘두로의 히람 세계’였던 셈이다.


페니키아는 제국이었을까?

두로를 비롯한 페니키아는 아시리아나 이집트 같은 영토 제국이 아니었다. 레바논 해안가의 두로, 시돈, 비블로스 같은 작은 도시국가들의 연합체였다.

그런데 왜 강대국들이 이 작은 나라에 줄을 섰을까. 지중해 무역권을 쥐고 흔들던 ‘해양 상업 제국’이었기 때문이다.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에 카르타고를 세울 정도로 자본과 해상 통제력이 막강했다.

솔로몬은 진짜 거대 제국을 따라 하고 싶었지만, 정작 모델로 삼은 건 돈은 엄청 많은데 땅은 좁은 이 해안 도시국가였다. 상업주의적 화려함과 세련된 디테일을 예루살렘이라는 산꼭대기 작은 도시에 억지로 구겨 넣은 것이다.


백향목은 왜 두로에서 사야 했을까?

두로 뒷마당에는 해발 3,000m의 레바논 산맥이 있었다. 고대 근동 전체에서 가장 질 좋고 거대한 백향목과 잣나무의 최대 자생지였다.

이집트는 모래와 갈대뿐, 메소포타미아는 진흙뿐, 이스라엘은 올리브나무나 뽕나무 같은 뒤틀린 나무뿐이었다. 거대 건축에 쓸 만한 목재를 가진 곳은 두로 하나였다.

대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솔로몬은 매년 수천 톤의 밀과 기름을 히람에게 지불했고, 나무를 베고 운반하기 위해 이스라엘 노동자 3만 명을 레바논으로 보내 강제 노역을 시켰다. 외형은 올라갔지만 이스라엘의 바닥 경제는 이 대금을 대느라 서서히 골병이 들었다.


성막 기구들이 성전에서 어떻게 바뀌었을까?

언약궤만큼은 광야 시절 그대로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출애굽과 광야의 그 하나님이라는 신학적 연속성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기구들은 달랐다.

하나님의 풍요를 극대화한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주변 강대국 신전들이 압도적인 스케일로 신의 위엄을 증명하던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이기도 하다. 알맹이(언약궤)는 지켰으나, 그것을 감싼 껍데기는 세속 제국의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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