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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Ja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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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5-7장 — 하나님이 그 많은 부를 주셨는데 성전을 화려하게 지은 게 왜 문제야?

화려하게 짓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최고의 부를 받았으면 최고로 돌려드리는 게 맞다. 소박하게 지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문제는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였다.


강제 노역 대신 자발적 축제였다면?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강제로 세금을 걷지 않았다. 마음에 자원하는 대로 예물을 가져오게 했는데,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모세가 “이제 그만 가져오라”고 말려야 했다.

솔로몬에게는 왕실의 막대한 재정이 있었다. 그 돈을 먼저 풀고 백성들에게는 자발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줬다면 어땠을까. “나도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해 무언가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어진 성전이었다면, 억압의 상징이 아니라 국민적 통합과 축제의 장이 되었을 것이다.


이방 스타일 대신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페니키아 디자인은 왕권의 위엄과 풍요의 신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다. 솔로몬은 이 세련된 유행을 따랐다.

대신 성전 벽면에 홍해가 갈라지던 역사,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던 기적,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임재를 순금과 보석으로 새겼다면 어땠을까. “이 건물이 화려하다”가 아니라 “이 건물에 새겨진 하나님의 역사가 위대하다”는 감탄이 나오는 성전. 화려함의 스케일이 아니라 화려함 안에 담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왕궁 옆 부속 예배당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성전이었다면?

솔로몬은 성전을 7년, 왕궁을 13년 동안 지었다. 그리고 두 건물을 한 울타리 안에 나란히 붙여 지었다. 백성들 눈에 성전은 자연스럽게 ‘왕실 전용 기도실’처럼 보였을 것이다.

성전을 왕궁보다 압도적으로 짓고, 공간적으로도 분리해서 모든 백성이 사방에서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배치했다면, “하나님은 왕만의 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신”이라는 메시지가 달랐을 것이다.


정의 위에 세워진 화려함

하나님이 주신 부로 웅장하게 짓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솔로몬의 실패는 화려함이 아니라, 내용물이 빠진 채 이방 제국의 껍데기만 채택한 것에 있었다. 외형은 순금으로 번쩍이되, 그것을 지은 과정에 단 한 사람의 눈물도 섞여 있지 않은 — 정의 위에 세워진 화려함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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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5-7장 — 솔로몬 성전을 지은 히람은 왕이야, 장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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