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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Ja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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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멜렉은 꼭 죽었어야 하는건가?

삼상 21-22장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또다시 의구심을 갖게 하는 내용이다.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가던 다윗이 놉 땅에서 거짓말로 아히멜렉을 속이고 빵을 얻어먹는다. 다윗은 아히멜렉이 사실대로 말해도 사울이 그를 죽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사울은 아히멜렉을 포함해 그 땅의 제사장 85명을 모두 죽인다.

참혹하다. 살려고 한 거짓말이 85명의 목숨 빚이 되어 평생 지고 가야 할 무게로 돌아온 것이다. 왕관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운 것이어야만 하는 걸까.

이것이 단순히 거짓말이 가져온 나비효과만은 아닐 것이다. 이후 사울 앞에서 떨면서도 다윗을 변호하는 아히멜렉의 모습을 보면, 다윗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도 아히멜렉은 빵을 주었을 것 같다. 그가 다윗을 맞이한 순간 이미 그의 운명은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꼭 그렇게 하셔야만 했냐는 것이다.

어떨때 보면 하나님도 중심을 테스트하시기 위해 우리를 헷갈리게 하시면서, 살려고 한 거짓말에 이런 끔직한 결과를 주셔야만 했냐는거다.

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관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죽음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우리 기준에서 아히멜렉은 새우 등 터진 비극적 엔딩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앞으로도 고난이 계속될 다윗에 비해 아히멜렉에게는 오히려 불행 끝 행복 시작일 수 있다. 하나님께는 삶과 죽음이 모든 것의 결론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 삶이 마무리되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다윗의 왕국과 치세에 관한 교훈이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실 수도, 까마귀를 통해 먹이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배고픈 다윗이 거짓말까지 하며 배를 채우게 몰아가셨다. 장발장의 빵 한 조각처럼, 다윗은 그 죗값을 평생 지고 살아야 했다. 이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가르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효율성이나 임기응변으로 유지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사기에서 치세와 하나님의 관계는 훨씬 단순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사가 다스리는 동안 나라가 평안하고, 그가 죽으면 다시 우상숭배와 침략이 반복된다. 어린 아이를 키울 때처럼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가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더 많은 인간관계와 사회 시스템 속에서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스스로 분별하고 판단할 능력을 키우는 일은 훨씬 어렵다.

하나님이 다윗을 통일 왕국의 왕으로 키우시는 방식은, 고난을 통해 복잡하게 얽힌 세상과 마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려는 과정 그 자체인 것 같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친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나는 아히멜렉이 왜 죽어야 했는지 모른다. 주인공이 아니라서 죽은 건지, 할 일을 다해서 죽은 건지, 사울 왕조를 무너뜨리고 다윗 왕조를 세우기 위한 정리였는지, 다윗을 위한 교훈이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고민 자체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그분의 소유로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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