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8장에는 독특한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께 물을 방법이 완전히 막혀버린 사울이, 자신이 쫓아낸 영매를 몰래 찾아가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는 장면이다. 부른다고 불려질 리 없는 사무엘이 실제로 나타나자 영매는 오히려 놀라고, 변장한 채 찾아온 이가 사울임을 알아본다. 이 행위 자체가 율법에 명백히 금지된 것인데, 그럼에도 사무엘이 나타나 응답하도록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 맞는지는 여전히 신학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사울은 살아있는 사무엘에게 이미 들었던 말, ‘하나님이 왕위를 네게서 빼앗아 다윗에게 주셨다’는 선언을 죽은 사무엘에게서 다시 듣는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것은 그것이 내일 일어날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그에게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었을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사울은 잘못했다며 빌었고, 사무엘은 이미 늦었다고 했다. 하물며 이제 남은 것이 하루뿐인데, 그에게 여전히 기회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있었다고 믿는다.
개인적인 복수였는지 마지막 사명감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을 잃고 실낱같은 목숨만 남은 상태에서 가장 장렬한 최후를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리에게는 언제나 회개할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단, 그 회개가 ‘이번 한 번만 살려달라’는 외침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방향으로의 돌아섬이어야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회개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미 늦었다”는 사무엘의 말은, 완전히 망가진 기계에 기름칠 좀 한다고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너무 멀어져버려서,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상태. 사울이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지만 자비로우신 분이다. 죄의 결과를 인과율에 따라 감당하게 하시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 예외, 즉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울에게도 그 은혜가 닿을 수 있었는지, 그것은 끝내 알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문을 닫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