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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지파 이야기 — 멸족 위기에서 메시아의 길까지

베냐민 지파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극적인 궤적이 펼쳐진다. 멸족 위기, 왕가, 숙청, 기득권, 그리고 메시아의 길.


베냐민은 왜 유다를 선택했을까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라헬이 낳은 아들은 요셉과 베냐민뿐이다. 혈통과 정서로 보면 베냐민은 에브라임·므낫세(요셉 자손)와 가장 가까운 형제다. 그런데 왕국이 분열될 때 베냐민은 요셉 자손의 나라인 북이스라엘(여로보암)이 아닌 유다(르호보암)를 선택했다.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지정학적 압박이었다.

베냐민 지파의 땅은 유다(남쪽)와 에브라임(북쪽) 사이에 낀 협소한 완충지대였다. 다윗이 빼앗아 수도로 삼은 예루살렘이 바로 이 경계선에 걸쳐 있었다. 만약 베냐민이 북이스라엘 편을 선택했다면, 남유다의 군사력에 의해 영토가 초토화되고 예루살렘 요새에 고립되어 몰살당했을 것이다. 베냐민에게 유다 왕국은 거절할 수 없는 이웃이었다.


다윗이 먼저 길들였다

사울이 베냐민 지파였다. 사울 왕가가 망하고 유다 지파인 다윗이 왕권을 잡았을 때, 베냐민 지파는 정권을 빼앗긴 반발심을 품고 있었다.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 반란을 일으킨 세바가 모두 베냐민 사람이다.

이를 잘 아는 다윗과 솔로몬은 베냐민 지파를 예루살렘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였다. 왕궁의 관료, 친위대, 성전 책임자로 대거 등용하며 유다와 경제적·정치적 이익공동체로 묶었다. 분열의 시점이 왔을 때, 베냐민의 상류층은 이미 북쪽 형제들보다 남쪽의 기득권 시스템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었다.

베냐민 지파 전체가 유다로 간 것도 아니었다. 영토의 남쪽(예루살렘, 아나돗)은 유다 왕국에 흡수됐고, 북쪽(벧엘, 여리고)은 북이스라엘의 영토가 됐다. 지파 자체가 남북의 경계선에서 반으로 찢겼다.


베냐민 출신 제사장이 있었을까

솔로몬이 베냐민 출신 제사장 가문을 활용했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은 오직 레위 지파, 그중에서도 아론의 자손만 될 수 있다. 베냐민 지파는 원칙적으로 제사장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비밀이 있다. 레위 지파는 자신들의 영토 없이 다른 지파 땅 안의 48개 성읍에 흩어져 살았다. 그리고 제사장 가문(아론 자손)들이 분배받은 성읍들이 집중된 곳이 바로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영토였다.

예루살렘 바로 북쪽의 아나돗은 지리적으로 베냐민 지파의 영토지만,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모여 살도록 지정된 제사장 성읍이었다. 혈통은 레위인이지만 수백 년간 베냐민 지파 사람들과 섞여 살다 보니, 정치적 정체성은 베냐민 지파에 종속된 제사장 가문이 형성됐다.


통혼이 만든 종교-정치 복합체

베냐민 지파(토지·군사력)와 아나돗의 레위인 제사장 가문(종교적 정통성)은 수백 년에 걸쳐 정략결혼을 맺었다. 베냐민 입장에서는 직접 제사장을 배출할 수 없어도 고모부, 외삼촌, 사돈이 전부 제사장이 됐다. 제사장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신탁과 성전의 경제적 이권이 베냐민 지파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

솔로몬이 아비아달 제사장을 숙청하면서도 아나돗의 기득권을 완전히 멸하지 못하고 예루살렘 성전 시스템 안으로 흡수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을 건드리는 것은 베냐민 지파 전체의 반란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변방에서 나온 사람들

하나님은 솔로몬이 정적들을 유배 보냈던 변방, 베냐민 아나돗의 소외된 제사장 가문에서 예레미야를 들어 쓰셨다. 예레미야는 솔로몬이 지은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이 성전은 무너질 것이다”라며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신약까지 이어진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리아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레위)이었고,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다. 이들은 예루살렘 근처 유대 산골, 과거 베냐민·유다 접경지에 살던 경건한 제사장 가문이었다.

솔로몬이 정치공학으로 짜놓은 기득권 판은 훗날 로마를 통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졌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시스템에서 소외되어 시골 마을에 살던 제사장 후손들을 통해 메시아의 시대를 여셨다. 인간들이 지정학적 계산으로 짜놓은 장기판이, 결국 예수가 걸어오실 길을 닦는 도구로 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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