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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4-10장 — 솔로몬 왕국은 실제로 얼마나 컸을까

성경은 솔로몬을 온 세상을 통치하는 왕처럼 묘사한다. 그런데 실제 역사는 조금 다르다.


이집트나 페니키아보다 강하지 않았다

객관적 제국의 규모와 문명의 영향력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나 페니키아를 능가한 적이 없다. 솔로몬의 번영은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거대 제국들이 동시에 쇠퇴했던 역사적 타이밍 덕분에 가능했던 일시적 정점이었다.

기원전 1200년경, 바다 민족의 침공으로 히타이트가 멸망하고 이집트가 급격히 쇠퇴했다. 이후 약 200년간 지중해 동부에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는 바로 이 공백기와 맞물린다.

솔로몬이 죽자마자 이집트 제22왕조의 시삭(셰숑크 1세)이 예루살렘을 침공해 성전의 보물을 싹 쓸어갔다. 진짜 패권국은 여전히 이집트였다.


페니키아의 배를 빌렸다

솔로몬은 해양 진출을 원했지만 배를 만들 기술도, 항해할 선원도 없었다. 페니키아 왕 히람에게 기술과 인력을 빌려 합자 형태로 무역을 했다(왕상 9:27). 솔로몬이 페니키아보다 영향력이 컸던 게 아니라, 페니키아의 해상 경제력과 솔로몬의 육로 무역로 통제권이 서로 필요해서 손을 잡은 것이다.


그때 유럽은 뭘 하고 있었을까

솔로몬이 지중해 끝 다시스까지 무역을 할 동안, 유럽은 암흑기 한가운데 있었다.

찬란했던 미케네 문명이 기원전 1200년경 무너진 뒤, 그리스는 글자조차 사라진 철기 암흑기를 지나고 있었다. 로마는 건국조차 되지 않았다. 스페인 남부는 풍부한 광물(은, 철)을 가진 원주민 사회였지만, 이를 글로벌 마켓으로 유통할 기술이 없었다. 지중해 서쪽은 거대한 자원의 창고였을 뿐, 패권을 다툴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공백을 페니키아인들이 독점했고, 솔로몬은 그 배에 편승했다.


이집트는 왜 직접 팔지 않았을까

솔로몬이 이집트의 말과 전차를 중계무역해서 팔았다(왕상 10:28-29). 이집트가 직접 팔면 될 텐데 왜 솔로몬을 통해야 했을까.

이집트는 나일강이라는 천혜의 젖줄이 있어서 굳이 거친 바다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지중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그들의 배는 평평한 나일강용이었지 파도를 견디기엔 부적합했다.

육로로 북쪽(시리아, 아나톨리아)으로 가려면 반드시 팔레스타인 통로를 지나야 하는데, 다윗과 솔로몬이 이 길목을 장악하고 요새화(하솔, 므깃도, 게셀)해버렸다. 이집트가 북쪽으로 물건을 팔려면 솔로몬의 관세를 내거나 솔로몬의 상단을 거쳐야만 했다. 이집트는 최고의 제조국이었고, 솔로몬은 독점적 무역로를 장악한 유통 플랫폼이었다.


성경이 솔로몬을 크게 그린 이유

실제 역사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페니키아 사이에 낀 중간 규모의 지역 왕국이었다. 그런데 왜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을 온 세상의 통치자처럼 묘사했을까.

이 책이 바빌론 포로기에 쓰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편집자들은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임할 때, 비록 작은 나라일지라도 온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신학적 이상향을 솔로몬에게 투사했다.

그리고 그 화려함을 높이 쌓을수록, 11장에서 무너지는 추락의 깊이도 깊어진다. 솔로몬이 이집트와 페니키아라는 세속 제국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다가 영혼까지 종속되어버린 과정을, 성경은 화려한 수치들을 통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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